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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카테고리샤트바와 마음

여연
2026-06-29
조회수 30

사트바와 마음


마음 또는 일반적으로 의식은 당연히 사트바의 영역이다. 의식 자체를 산스크리트로 사트바라고 한다. 마음이 평온하고 깨끗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 사트바는 사물의 진리를 인식하게 해 주는 명석함을 창조하며, 빛과 집중, 헌신을 준다. 

라자스와 타마스는 정신적인 부조화의 요소들로, 동요와 미학을 일으켜 결국 그릇된 상상과 오인을 낳는다.

 라자스로부터 외부 세상이 자체로 실재한다는 거짓된 생각이 오며, 이는 우리 자신 밖에서 행복을 추구하게 하여 내적인 평화를 상실하게 만든다. 

라자스는 욕망, 왜곡, 교란, 감정적 혼란을 창조한다. 그것은 마음의 감각적인 면에서 지배적이다. 왜냐하면 감각은 늘 움직이면서 갖가지 대상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각적인 향락의 추구에 빠져 있는 한, 우리는 라자스의 불안정성의 지배를 받는다.

타마스로부터 우리의 참된 본질을 가리고 인식의 힘을 약화시키는무지가 온다. 

타마스를 통해 에고 또는 분리된 자아의 생각이 생기며 그로 인해 우리는 우리 자신이 혼자이며 고립되었다고 느낀다. 타마스는 둔하고 제한적인 몸과 동일시된 의식에서 세력을 떨친다. 우리

의 정체성과 복지에 대한 감각이 우선적으로 신체적인 한, 우리는 타마스의 어두운 영역 안에 남아 있다.

사트바는 라자스와 타마스의 균형이며, 라자스의 에너지를 타마스의 안정성과 결합시킨다. 

사트바를 증가시킴으로써 우리는 평화와 조화를 얻어 해탈이 있는 태초의 자연과 순수한 영혼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미덕을 고수하는 것과 같은, 사트바에 대한 집착은 마음을 구속 시킬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순수한 사트바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그것은 사트바에 집착하지 않는 형태, 또는 사트바 자체의 특질들을 고수하지 않는 사트바이다. 순수한 사트바는 라자스와 타마스를 비난하지 않고 우주의 조화 속에서의 그것들의 자리, 곧 우리의 참된 본질과 동떨어진, 생명과 몸의 외적인 요소들로서의

그것들의 올바른 자리를 이해한다.


 순수한 사트바가 의식 속에서 세력을 떨칠 때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우리의 영원한 참나를 발견하며, 영혼은 자신의 기본적인 순수함을 다시 얻어 신과 합일한다. 

균형에서 벗어날 때 세 구나는, 영혼이 갖가지 몸으로 태어남과 죽음, 행복과 슬픔을 경험하면서

자연의 영역들을 통해 진화하는 우주 진화 절차를 일으킨다. 세 구나의 움직임은 창조와 동일 연장선상에 있다. 

 균형 상태로서의 사트바는 모든 참된 건강과 치유를 책임진다. 건강은 사트바적인 삶에 의해 유지되며, 그것은 순수한, 명석함, 평화를 배양하면서 자연 그리고 우리의 내적 참나와의 조화 속에서 사는 것이다. 

라자스와 타마스는 질병을 일으키는 요소들이다. 

라자스는 통증, 동요, 에너지 손실을 일으키며, 타마스는 정체, 쇠퇴, 죽음을 발생 시킨다. 

라자스와 타마스는 통상 함께 일한다. 라자스는 에너지의 과도한 표출을 일으키며, 이는 궁극적으로 고갈로 이어져 타마스가 세력을 떨친다.


 예컨대, 지나치게 강한 음식, 알코을, 성적 탐닉은 처음에는 라자스적(자극적)이다가 마침내는 피로, 에너지 붕괴와 같은 타마스적인 조건으로 이어진다. 심리적 수준에서는, 몹시 거친 감정인 지나친 라자스는 타마스(정신적인 둔감성과 우울증)로 이어진다.



발췌 : 아유르베다와 마음 "의식의 치유" 중에서



글쓴이 : 여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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